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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12 13:49
탐구공동체: 철학과 공동체 교육(Robert J. Mulvaney)
 글쓴이 : 백서원
조회 : 373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1511)


1. 서양철학의 엘리트주의 전통


  서양의 제도권 철학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들 중에는 이른바 ‘엘리트주의’라고 할 수 있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철학이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철학을 추구하는 데에 필요한 여가 시간과 지적 능력을 가진 자는 소수뿐입니다. 다수의 대중은 너무 어리석거나, 일하는 데에 시간을 전부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엘리트주의는 세 가지에 대한 믿음으로 드러나는데, 이들은 ‘노인’, ‘전문가’, ‘개인’에 대한 믿음들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는 젊은이일 수가 없고, 아마추어일 수도 없으며, 무리나 공동체에 의해 철학이 이루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추구는 원숙하고 고독한, 독특한 천재성을 가진 전문가들에게만 특권적으로 부여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입장에 대한 강력한 반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설에 의해서도 반례가 제시됩니다:

  “사람이 어릴 때에나, 공부에 지친 노인이 될 때에나, 철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의 건강을 지키는 데에는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때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서 철학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행복의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가 버렸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릴 때나 늙은 때나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소크라테스 또한 ‘위대한 아마추어’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추어는 현대적으로는 ‘비전문가’라는 뜻이지만, 어원에 의하면 ‘애호가’ 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Mulvaney는 이 두 의미 모두에서 소크라테스가 아마추어였다고 표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했으나, 그러한 애정을 비전문적이고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지요. 우리는 그가 정답보다 질문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학교를 설립하지도, 책을 집필하지도 않았으나, ‘서양의 스승’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소크라테스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대학에서 정규직 교수가 되지는 못했을 테지만, 그의 충실한 제자인 플라톤이라면 소크라테스의 ‘인생 경험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명예학위라도 주었을 것이라고 농담하곤 하지요. 에피쿠로스 학파가 젊은이들을 철학에 초대한 것과 같이, 소크라테스는 사유하는 인간을 철학적 향연에 초대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주된 경향은 아니며, 역사의 지배적인 경향은 엘리트주의 방향으로 흘러갔지요. 지성사가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겪게 된 것은 최근 250년 정도입니다. 그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정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과학의 영역에서는 자유로운 탐구가 활성화되었고, 노예제가 종식되었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시작되었고, 공공 교육이 확장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져, 철학에 대한 고전적인 관점으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철학 프로그램(the Philosophy for Children program/이하 P4C)은 철학의 정치적/사회적 기반시설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의 일례입니다. 정규 교육과정의 보다 이른 단계인 저학년으로 철학 교육을 확장하는 것은 이전의 늦은 청소년기나 성년기로 철학 교육을 제한했던 전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어린이들을 배제해왔던 연구에 이제는 어린이들을 초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언급되었던 ‘노인’, ‘전문가’, ‘개인’의 우상들에 대한 믿음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지요. Mulvaney는 이 세 가지 우상, 또는 엘리트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타파해야 할 믿음들을 각기 P4C의 특징들과 직접적으로 비교 분석합니다.


2-1. ‘노인’의 우상


  서양사에서 철학을 성숙이나 많은 나이와 연관짓는 것은 오랜 전통입니다. 현자는 언제나 젊은 청년도, 여인도 아닌 나이 지긋한 남성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아카데미아를 그린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묘사된 플라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그의 저서에서 어린이의 단계에서는 인간적인 성취나 미덕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어떤 어린이도 온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 미덕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는 미덕의 일종입니다. 따라서 어떤 어린이도 지혜로울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이처럼 대체로 인류사에서 어린이란 인간성을 완전히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로 이해되며, 오로지 그 삶의 목적이 성인의 성숙함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설정되곤 합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에 따라 교육 이론 또한 교육의 목적이나 지향점을 아이들이 성인의 지적, 도덕적, 실천적 가치들에 도달하게끔 하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 전통적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지혜를 타고나서 그것들을 상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완전히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태어나 성숙한 인간성이 갑자기 발휘되기까지 수면 상태에 있는 그런 존재들도 아니지요. 오히려 아이들은 열려 있고,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고, 궁금해하며 성장해가는 인간들로, 다른 지적 능력들과 마찬가지로 계발되거나 퇴화될 여지가 있는 철학적인 탐구의 경향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철학이란 행복의 추구라고 본다면, 성인들과 다를 바 없이 어린이들 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분명하며, 그들의 정서적인 성향도 지적 성향과 마찬가지로 계발될 수 있습니다. ‘호기심’과 ‘행복 추구’는 철학적 삶을 구성하는 두 심리학적 동기가 되며, 이는 결코 어린이들에게 낯선 것이 아닙니다.


2-2. ‘전문가’의 우상


  P4C는 또한 ‘전문가’에 대한 믿음도 거부합니다. 물론 철학적 삶이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어린이들의 철학적 탐구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 경험이 부족하고 비전문적인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할 만한 다른 주장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대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학의 존재 가치는 그것이 학문과 삶의 열정을 연결해주며, (…) 젊은이와 노인을 결합시켜 준다는 데에 있다.’ 철학적 작업에 어린이들이 가져다주는 가치는 마치 젊은 대학생이 대학교에 제공하는 것과 같은 삶의 열정과 신선한 상상력입니다. 아이들은 그들의 선생님보다 훨씬 뛰어난 상상력과 새로운 충격, 정신적 유희를 철학에 접목시킬 수 있으며, 비록 정돈되고, 반성적이며, 체계적이고, 암기를 요구하는 사항에는 약하지만 열린 맥락, 대화, 문제제기, 그리고 번뜩이는 직관에서는 뛰어납니다. 그들은 철학에 있어서 노동자가 아니라 애호가에 가깝지요. 철학은 아이들에게 고된 학문적 노동보다는 쉬는 시간과 같은 여가에 더 가깝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이 다른 과목의 숙제는 싫어하면서 철학 공부를 하는 동안 다루었던 문제들은 기꺼이 집에 가서도 생각하려고 하는 현상은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2-3. ‘개인’의 우상


  철학자들 중에서 배움의 초기 단계에서 느꼈던 희열과 즐거움을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제도권 철학과 경험의 누적 등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이 결여되어 버렸기 때문이지요. 화이트헤드는 ‘세계의 비극은 상상력은 있지만 경험은 적은 사람들과, 경험은 풍부하지만 상상력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전적인 생각에 의하면 철학자들은 고독한 영웅들이고, 영웅은 대중에 섞이지 않는 법입니다. 이러한 개별성은 유아독존적인 자기중심주의로 빠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철학적 활동이 개인에 국한될 때에만 발생합니다. 철학이 공동체의 활동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P4C가 ‘영웅적인 개인’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적 대화는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강력한 교정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P4C는 어린아이의 사회성에 기반해 진지한 대화의 습관을 길러 줍니다. ‘공동의 지혜를 증진시키는 공통의 성장’은 공교육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소크라테스적 대화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탐구공동체는 지혜로운 사회를 목표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의견에 열려 있고, 공감할 줄 알며, 타인의 주장을 반영시킬 줄 아는 지혜로운 개인을 필요로 하게 되지요.

  대학 이전의 교육 과정에 철학을 도입하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교육 이론가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지속적 교육의 개념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속성(continuity)’의 개념이란, ‘다양성 안의 자기정체성’과 ‘다수성 안의 통일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지속성이란 구별되지 않는 천편일률적 단일성이 아니며, 단지 한 곳에 모아 놓은 각양각색의 개인들도 아닙니다. 지속성은 내적인 단합과 조화로운 단일화를 요구하며, 비유하자면 마치 여러 개의 음들이 새로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악과도 같지요.


  결국 P4C는 교육의 이론으로서 논리적으로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Mulvaney의 주장입니다. 민주주의 교육 이론에서 주장하는 평등적 교육과 이만큼 잘 합치되는 프로그램은 드물지요. P4C는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배우게끔 촉구하고, 인류 공동체의 가장 약하고, 의존적이고, 어린 구성원들을 지혜의 탐구에 동참시키게끔 촉구합니다.